[미국박사유학가기-1] 싱가폴에서의 초등학교,중학교, 그리고 강남8학군에서의 치열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미국박사유학가기-2] 한양대학교 8학기동안의 고군분투.. 학점가꾸기, 그리고 보람찼던 대학생활.

[미국박사유학가기-3] 공군 637기로서의 군생활 이야기. 서울공항 (15혼성비행단)에서의 추억.

[미국박사유학가기-4] 나의 취미, 영화보고 이곳저곳 여행다니기.

[미국박사유학가기-5] KAIST 대학원에서의 석사생활 2년, 그리고 유학에 대한 결심.

[미국박사유학가기-6] 유학준비하기, 가고싶은 학교와 전공, 교수님 알아보기.

[미국박사유학가기-7] 유학준비하기, TOEFL과 GRE시험보기.

[미국박사유학가기-8] SOP (Statement of Purpose) 자기소개서 작성하기.

[미국박사유학가기-9] 국내 장학금 신청하기, 삼성장학금과 KFAS(고등교육재단) 장학금.

[미국박사유학가기-10] 교수님들께 추천서 (LOR, Letter of Recommendation, Reference letter) 작성 부탁드리기.

[미국박사유학가기-11] 미국 대학원 유학원서 접수하기, 학교별 서류준비와 주의사항.

[미국박사유학가기-12] 미국 대학원 교수님과의 첫 skype 인터뷰.

[미국박사유학가기-13] 기다리던 합격발표 이메일들! 그리고 불합격(Rejection)메일들...

[미국박사유학가기-14] 학교 선택과 비자, 여권등 준비하기.

[미국박사유학가기-15] 국내 장학금 신청하기 (일주, 정송, 관정재단 등)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고 특별히 '고3에서의 해방감'을 만끽하며 일탈을 즐기진 않았다. 술도 별로 안좋아하고..동아리에도 들었지만 1학년이 끝나자마자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후에 2학년부터 전공수업을 배우다보니 동아리에 1학년때만큼 신경을 쏟기 힘들다는것을 깨달았다.


▼ 2011년 봄, 4학년 1학기때 찍은 한양대학교 정문. 


나의 공부방법, 그리고 8학기동안의 치열했던 공부.

1학년 수업은 다행히도 고등학교때 일반화학/일반물리를 대충 서울대 입시준비하며 다 봐두었기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모든 공부 스케쥴이 고등학교때와는 다르게 학원의 도움없이 나 혼자 짜야한다는점이 달랐지만 중고등학교때 해왔던것처럼 시험 3주정도 전부터는 시험범위를 꼼꼼하게 공부해서 나만의 노트로 두세번 정리했다. 뭐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원서책이고, 수많은 공식들이 나오는데 공식과 공식사이에 숨겨진 단계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 공식에서 다음 공식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는 수많은 자잘한 단계들이 생략되어 있었고 그걸 공부하지 않고서는 응용된 문제를 풀지 못하기에 그 공식이 유도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당연히 Google 검색을 많이 하면서 외국사이트들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 4학년 1학기, 집적회로시스템설계 시험대비 정리노트. (2011년)



 

그렇게 시험범위 공부를 하면서 연습장에 범위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의 정리노트를 과목별로 만들었고 정리노트를 한번 만드는게 아니라 최소 2번이상 만들면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정리했던 전공과목 노트들은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도 가끔 찾아볼정도로 도움이 되고있다. 아무래도 대학원에서 실험하면서 이론과 멀어진다 해도 결국 실험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가장 중요한것이 교과서적인 원리이니까.. 


▼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한양대학교 중식당의 순두부찌개... 더이상 못먹는다는것이 한이다..ㅠ




대학에 와보니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다. 수업시간때 처음 들어보는 내용을 교수님이 빠르게 설명하는데도 마치 다 아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지어는 질문까지 하는 친구들을 보며 진심으로 놀랐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나는 수업시간에 졸지 않으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쳐도 처음 45분을 졸기 바빴다. 앞쪽에 앉았지만 감기는 눈꺼풀을 내 힘으로 막아내기 힘들었다. 졸지 않는 날에도 수업을 들으면서 막 고개를 끄덕이며 빠른 교수님의 진도속도를 따라가며 감동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다. 바로바로 수업시간에 강의를 들으면서 이해하는 친구들보다는 머리회전이 조금 느리구나..정도 생각하고 넘겼다. 빠른 진도를 따라가려면 매일 집에가서 그날 배운내용을 복습해야 했지만 보통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보통 수업시작하고 5분정도부터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는데, 매일 잔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졸음이 쏟아지는 전공시간에는 초반 45분정도를 비몽사몽으로 노트에 필기한 글씨체가 꼬부랑 춤을 춘다. 그리고 깨면 이미 진도는 엄청 지나가 있고 아무리 또렷하게 집중해도 교수님의 설명을 따라가지 못했다. 앞부분을 졸았으니... 그렇다고 바로 그날 집에 가서 복습을 해본적도 거의 없다. 시험기간 3주전까지는.. 


▼ 시험기간동안 하루 한병씩 꼭 마시며 공부했던 졸음해소음료, YA. 다른건 효과가 없었는데 정말 YA 한병이면 피곤함없이 거뜬하게 공부했다. 졸리던것도 확 깨고... 대학원때 마셔보니 이제 안통하더라... 내성이 생겼는지.. 뒤에 달력에 보면 그날 공부할부분을 적어두고 스케쥴에 맞춰서 시험보기 전까지 과목별로 2~3번정도 전범위를 훑으며 공부했다. 사진은 2010년 3학년 첫 중간고사 시험준비중 찍은사진..



시험기간 3주전이 되면 졸면서 겨우 필기해둔 꼬부랑 글씨들을 해석?해내기 위하여 교과서를 다시 편다. 45분 졸았던 대가는 혹독했다. 최소 3시간동안 책을 보며 한줄한줄 스스로 (구글의 도움도 많이 받으면서) 증명해내는데 평균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수업시간에 45분 집중했다면 버리지 않았을 2시간 15분을 버리면서 시험공부를 했고 정리노트를 만들어나갔다. 이렇게 정리노트를 만드는것을 수업 같이 듣던 친구들도 당연히 알았고 시험 일주일전에는 항상 나보고 쪽집게 강의를 해달라고 했던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내게는 일석이조. 친구들에게 설명해주면서 내가 모르는 부분도 자연스레 알게되고 머릿속에서 정리를 할수 있었다. 타인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지식은 내가 아직 완전히 머릿속에 넣지 못했다는 증거니..


▼ 2010년, 3학년 1학기 시험공부중..




대학생활동안 내 과제를 참고하던 친구들도 없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나는 열심히 시간들여서 공부해서 과제를 해왔는데  여러사람의 과제들을 참고해가면서 금방 과제를 쉽게 끝내는 사람들도 봐서 억울할때도 있었다. 하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어차피 나는 공부해서 내 과제를 당당히 한거고 그렇지 않으면 시험때 제대로 문제들을 풀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콩심은데 콩나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서 누가 과제하는 방법좀 알려달라고 하면 별말 안하고 도와줬다. 결국 공부는 스스로, 혼자하는것...아무리 족집게 정리를 시험 하루전에 들어봤자 깊게 공부 안하고 단기기억으로만 공부한다면 단순 암기 몇문제 말고는 풀수가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대학교 성적을 공개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유학준비하면서 스펙과 진학결과를 워낙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좀 더 자세하게 써줘야만 이정도 학점으로 어디를 어떻게 갔구나, 이런 코스로 가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를 알수 있을듯하여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게되었다. 부끄러운 성적은 아니라 공개하는데 덜 부담되어 다행이다)


이렇게 공부하다보니 의도치 않았지만 1학년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수능때 수리가 2등급이 나오는바람에 과탐1등급이었어도 이공계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첫학기 입학금을 거의 470만원정도 내고 들어가서 다행히 1학년 1학기때 전자과 석차 2등을 하여 2학기때는 전액장학금을 받았다.


1학년 2학기때도 성적은 잘 나와주었다. 전자과 석차 1등, 누적석차 3등이 되었다.



1학년이 끝나고 군대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군대를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애초에 아무것도 모를때 다녀오는게 좋아보였다. 육군은 너무 흔하고, 해병대는 너무 힘들거같아서 공대 전공을 살릴수 있다던 공군을 선택했다. 그리고 2006년 3월 6일, 공군 637기로 입대하였다. 군대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하고, 제대를 하고나서 군휴학3년을 마치고 2009년, 2학년 1학기로 복학을 해보니 나랑 같이 1학년때 수업을 들었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같이 2학년으로 복학을 해있었다. 혼자 쓸쓸히 학교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좋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열댓명의 친구들이 1학년때부터 4학년때까지 그래도 쭉 비슷한 과목을 들으며 같이 졸업할수 있었기에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군대다녀오면 철든다고들 하는데 2학년에 올라와보니 철이 안들고는 1학년때의 성적을 유지하기가 정말 힘들어보였다. 2학년 1학기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공포함 총 21학점을 겁도없이 신청했고 피토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노력의 결과는 달콤했다. 이때 확실히 전공에 투자한 시간은 학점으로 증명된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해당학기 석차는 2등, 누적석차 2등. 다행히 2학년 1학기때도 전액장학금을 확보할수 있었다.



2학년 2학기때부터는 이제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성적을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이나 석차를 한자리수로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양대를 다닌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모양새가 그렇게 되어버렸고 마치 디펜딩챔피언이 성적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하며 느끼는 불안감을 나도 느끼게 되었달까... 2학년 2학기도 부담이 컸지만 다행히 공부열심히 하면 성적 잘나온다는 진리는 유지되었다. 학기석차 3등, 누적석차 2등. 또 한학기의 전액장학금이 연장된셈..그리고 전공수업 수강신청을 하며 전자과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전공을 공부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회로, 반도체, 컴퓨터, 통신, RF 등등..물론 자신의 관심분야 하나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듣고 교양으로 학점을 채울수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과목들을 들어보지조차 않고 어떻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분야를 고르겠나 싶어서 다듣기 위해 노력했다.


3학년 1학기 올라와서 갑자기 학교에서 이공계장학금을 준다고 연락왔다. 알고봤더니 입학시 수능 점수 수리1등급, 과탐1등급으로 이공계장학금을 받던 사람들 중 장학금 유지 최저학점을 유지하지 못해서 취소된 돈을 각 학교별로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다시 나누어주는것이라고 한다. 이공계장학금은 평점 3.5이상만 받으면 계속 전액장학금이 나오니 훨씬 마음의 짐을 덜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나, 3학년 1학기 석차는 무려 12등으로 곤두박질치고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체 누적석차는 1등으로 올랐고 (198명중) 이는 계속 1등하던 애가 그 해에 변리사인지 기술고시인지로 빠져서 그렇다는 소문을 들었다.


3학년 2학기도 토나오게 힘든 전공들의 연속이었다. 3학년 1학기때의 RF소자설계도 힘들었지만 3학년 2학기때의 광전자공학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내 공부방법이 통했는지 처음으로 올A+을 받아보았다. 어릴때 외국을 살다와서 영어회화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것과 실제 전문적으로 영어를 구사하는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협상영어회화를 수강했다. 이제 전공은 거의 다들었으니..학기석차와 누적석차 둘다 1등을 받았다.



4학년이 되면서 참 많은 고민을 했다. 한양대학교의 대학원, KAIST, 취직, 유학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전자과에서 학사공부만 해서는 전자공학계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것같다는 생각이들어서 취직은 일단 제외. 바로 유학을 나가기엔 우리나라 전자업계도 꽤 잘 나가는데 국내에서 아무 연구경력도 없이 유학을 나가기 힘들것같아서 제외. 자교대학원을 갈까 카이스트를 갈까 고민을 많이했는데 결국 카이스트를 택했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4학년1학기에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을수 있었다. 특히 도움이 되었던 수업은 공학영어프레젠테이션. 영어로 공학적인 분야의 발표를 어떻게 잘할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배울수 있어서 대학원 석사생활동안 큰 도움이 되었다. 학기석차는 6등, 누적은 1등.


카이스트는 보통 여름방학때 그 다음해 전기 석사신입생 모집을 한다. 여름방학중에 면접시험도 보고 합격자 발표가 나기에 4학년 2학기를 시작하던 때에는 이미 어느정도 카이스트 합격사실을 알고 있었다. 4학년 2학기는 이제 더 들을 과목도 없어서 미래에 투자하는셈 치고 Presentation Skills와 현장영어를 들었다. 학기석차 4등, 누적석차 1등. 




결국 감사하게도 졸업할때 전자과 수석졸업 (아래 성적기록에서는 187명이라고 되어있었지만 유학서류를 위해 석차를 떼어보니 총 160명으로 바뀌어있었다)을 할 수 있었고 한양대학교 8학기, 군생활27개월 포함 2005~2012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게되었다. 최종 누적 학점은 4.38/4.50이었다. 다행히 재수강을 한번도 하지 않아서 방학때마다 즐겁게 푹 쉬며 여행다닌것 같다.


1학년 1학기때 입학금 및 첫 등록금을 내고 다행히도 나머지 7학기동안은 무료로 공부할수 있었고 장학금 유지는 내 대학생활에 큰 동기부여가 되어서 좋았다. 당시 한양대학교는 동시에 두가지의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되어있어서 다른 외부 장학금은 알아보지 않았다. 성적장학금의 경우 전자과기준으로 대략 3명정도한테 주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이공계장학금을 중복으로 받지못하니 그 상위 1~3등중 이공계장학금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략 5~6등까지한테 전액장학금이 내려왔다. 그 이후에는 70%, 50%, 30% 장학금이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 입학부터 졸업까지 함께 수업들으며 고생했던 동기들과 함께..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유학간친구도, 회사간친구도, 대학원에 있는 친구들도 있다.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나..)



한양대학교 전자과 졸업작품 제작기

한양대학교 전자과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4학년 한해동안 졸업작품 또는 졸업 논문을 써야 한다. 졸업 논문은 자교 대학원생으로 진학할 학생위주로 우선 배정되는 경향이 있었기에 나는 4학년이 되던 2011년 초부터 친구 한명과 함께 졸업작품 아이디어 구상을 시작했고 2학년때 실험시간에 잠깐 접했던 LED 잔상디스플레이를 응용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4학년 1학기는 그냥 아무것도 거의 안한채 보냈고 여름방학 2~3주동안 바짝 밤을 새가면서 실험과 코딩을 했다. 자전거 바퀴에 일렬로 LED를 이십여개 달아서 바퀴가 돌아갈때 LED의 잔상을 통해 글씨/그림/애니메이션등을 구현해내었고 이를 안드로이드폰의 블루투스기능으로 제어할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디버깅을 해가며 밤새길 2주.. 


▼ 밤새가며 학교 실험실에서 계획짜고 졸업작품을 만들던 2011년 7월..






드디어 만들어내었고 정말 기뻤다. 특허를 내자는 지도교수님의 의견에 찾아보았지만 이미 잔상디스플레이는 이런저런 특허들이 있었다. (블루투스기능을 통해 폰으로 잔상을 제어하는 특허는 못본거같았는데...) 그래서 특허는 접어두고, 교내 전자과 졸업작품 대상, 한양대 공대전체 캡스톤 경연대회 대상을 타며 아름답게!?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 졸업작품 작동 동영상


▼ 작동 사진. 한양대학교 로고와 바퀴의 회전 RPM이 LED디스플레이로 바퀴표면에 보인다.


▼ 작동 사진. 내 이름과 친구이름, 그리고  Graduation Project라고 출력.


▼ 작동 사진. 한양대학교 로고 출력.


▼ 작동 사진. 뛰어가는 사람의 애니메이션과 (동영상참고) 총 이동거리를 미터단위로 실시간 출력.


▼ 작동 사진. 한양대학교 로고와 현재 바퀴의 속력을 실시간 출력.


▼ 2010년 4월, 봄꽃만개한 중앙도서관앞을 지나며...



해외조사연수단 공모전참가, 그리고 장관상을 받다!
대학생활중 영어회화를 까먹지 않고 계속 사용하고싶어서 다양한 대외활동을 알아보던중 친구의 소개로 IGS (International Goodwill Society)를 알게되었다. 영국대사관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에 영어로 대학생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고 뒷풀이도 하며 친목활동도 할수 있는 최고의 연합동아리였다. 가서 Regular Member가 되려면 몇번이상 정기적으로 토론에 참석하고, 5분동안 짧게 Speech를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 정회원(Regular Member)들의 평가를 받아 합격되면 회원증이 나온다. 물론 정회원이 아니라도 토론참석에는 전혀 제한이 없었다. 이렇게 활동을 하다가 이곳에서 알게된 친구들과 함께 공모전을 참가하게 되었다. 

공모전 이름은 "대한민국 청소년 세계를 가다, 해외 조사연수단"이며 보건복지부와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에서 주최를 했다. 대략 70여팀 (총 280여명)을 선정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분야의 선진기술/회사/도시 등에 방문하여 조사하고 다녀와서는 결과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모집분야는 청소년분야/한민족분야/인문사회이공분야/진로취업분야이고 왕복항공료만 지원해주었다. 2009년, 군제대후 복학했던 2학년 1학기... 그것도 무려 21학점의 엄청난 무게를 견디면서 지원했는데 정말 운좋게도 최종합격하여 북유럽을 가게되었다. 우리팀의 주제는 해외의 친환경기술, 기업, 마을등을 탐방하여 우리나라에 적용시키는 방안에 대해서 제안서를 제출했고 서류평가와 최종면접을 뚫고 최종합격. 대략 4:1정도의 경쟁률이었다고 기억한다. 

▼ 우리팀명은 "Feel the Green! Findland"였다. 우리팀 제안서 PPT 첫장..



▼ 제안서 PPT.

물론 해외조사연수단이라는 엄연한 1차적인 목적은 있었지만 인터뷰등의 공식일정시간 이외에는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북유럽 이곳저곳을 여행다녔다. 핀란드 헬싱키의 친환경 도시인 Eco Viikki와 Pikku Huopalahti를 방문했고 방문과 관련하여 헬싱키 시청의 도시계획과 엔지니어와 공무원분께서 직접 안내를 해주셨다. 종이배터리개발사인 Enfucell도 방문하고, 친환경 항공사로 알려져있는 핀에어 본사도 다녀왔다. 스웨덴 스톡홀롬의 친환경 주거단지인 Hammarby Sjostad, 노르웨이 오슬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공공자전거대여에 대해서도 둘러보았다.

▼ 핀란드 헬싱키의 어느 공원에서...

▼ 길걷다가...

▼ 핀란드 헬싱키 숙소앞에서...

▼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핀에어 Finnair 본사 앞에서..

▼ 핀란드 헬싱키의 Green Net 방문 인터뷰,

한국에 귀국해서는 결과보고서를 썼다. 대략 45장정도의 보고서를 써냈고 우리팀이 대상인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게되었다. 대학 2학년때 처음 참가한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해외 다양한 기관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자료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힘든점도 많았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울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 결과보고서

▼ 보건복지가족부장관상!
 


분명히 힘들기도 했고 군생활포함 길었던 2005~2012년의 대학생활은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았고 유학을 준비하며 SOP를 쓸때 이러한 내용을 잘 녹여내어 다양한 경험과 이를 통해 내가 배울수 있었던 점을 구체적으로 포함했다. 화려하고 거창한 스펙도 중요할수 있겠지만 결국 SOP에서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왜 미국에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연구를 하고싶은지가 중요한것이니...


▼ 2011년 4학년 1학기 축제. 매 학기 축제는 빠짐없이 참여해서 재미있게 즐겼다..ㅎㅎ



다음 글에서는 공군에서의 27개월에 대해 써볼까 한다. 군대문제를 해결 하지 않았다면 유학은 힘들었을것이고 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군생활이기도 했기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