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박사유학가기-1] 싱가폴에서의 초등학교,중학교, 그리고 강남8학군에서의 치열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미국박사유학가기-2] 한양대학교 8학기동안의 고군분투.. 학점가꾸기, 그리고 보람찼던 대학생활.

[미국박사유학가기-3] 공군 637기로서의 군생활 이야기. 서울공항 (15혼성비행단)에서의 추억.

[미국박사유학가기-4] 나의 취미, 영화보고 이곳저곳 여행다니기.

[미국박사유학가기-5] KAIST 대학원에서의 석사생활 2년, 그리고 유학에 대한 결심.

[미국박사유학가기-6] 유학준비하기, 가고싶은 학교와 전공, 교수님 알아보기.

[미국박사유학가기-7] 유학준비하기, TOEFL과 GRE시험보기.

[미국박사유학가기-8] SOP (Statement of Purpose) 자기소개서 작성하기.

[미국박사유학가기-9] 국내 장학금 신청하기, 삼성장학금과 KFAS(고등교육재단) 장학금.

[미국박사유학가기-10] 교수님들께 추천서 (LOR, Letter of Recommendation, Reference letter) 작성 부탁드리기.

[미국박사유학가기-11] 미국 대학원 유학원서 접수하기, 학교별 서류준비와 주의사항.

[미국박사유학가기-12] 미국 대학원 교수님과의 첫 skype 인터뷰.

[미국박사유학가기-13] 기다리던 합격발표 이메일들! 그리고 불합격(Rejection)메일들...

[미국박사유학가기-14] 학교 선택과 비자, 여권등 준비하기.

[미국박사유학가기-15] 국내 장학금 신청하기 (일주, 정송, 관정재단 등)



사실 군대얘기는 자세히 쓰기엔 보안상문제도 있을테니 간략하게만 써볼까 한다. 아래 올린 훈련소 사진들은 모두 공군측에서 홈페이지에 공개했던 소개자료들 이거나 또는 당시 매주 부모님들께 보내는 공개 편지에 올라와있던 사진들이라 보안상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내 사진은 사진 촬영이 가능한 면회장에서 부모님/친구들이 가져온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므로 보안상 문제가 없음을 미리 밝힌다.



유학을 가려면 군대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나 같은 경우 대학교 저학년당시에는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그냥 당연히 군대는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1학년 마치고 군대를 갈 결심을 했다. 나는 애초에 비행기를 워낙 좋아했으므로 고민도 하지않고 공군 지원! 서류 합격후 서울공항에 가서 1500미터 달리기 (7분 44초이내)를 합격 하고 (대략 5분 30초?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 입대하였다. 시험 봤을때의 나이는 만 19세도 되지 않았고 당연히 입대신체검사도 안했지만 공군은 공군 신검만 통과하면 입대가 가능했었다.


▼ 1차 합격 후, 집 근처 공군기지인 서울공항 (이곳에서 내 군생활을 할줄은 아직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당연히)에서 면접과 달리기시험 (1.5km, 7분 44초)을 보았다. 




▼ 그렇게 공군에 합격한뒤 2006년 3월 6일에 공군 637기로 입대하였다. 그 전에 머리부터... 당시 같이 머리깎는거 구경(이라고 하고 놀리러 온..)친구가 찍은 사진. 집앞 블루클럽...
 



훈련소에 처음 들어간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노트한권 가지고 들어간게 있어서 둘째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 군대에서의 첫 일기..  "3/6 Tue. 첫날 아침.. 아직 정신없다. 오늘 신체검사... 피복측신&피검사&신체검사."



▼ 참 간단하게 쓰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시작해서 제대할때까지 몇몇일 빼고는 매일 썼다. 따라서 2006년 3월 6일부터 2008년 5월 28일 제대하는 날까지 내가 한 모든일이 적혀있다. 이등병때 자대에서 일기쓴다고 욕먹으면서도 숨어서 썼고... 휴가나가서도 꼬박꼬박 썼다. 몇몇일 못쓴날은 그날 못썼다는 뜻이지, 그 다음날 못쓴날의 일기도 다 썼다.. 그렇게 일기장이 총 7권이다.



다시 훈련소 얘기로 돌아와서..훈련소는 역시 힘들었다. 전군 통틀어서 가장 긴 훈련소 기간이었고 (7주) 끝나면 내가 배정받은 전력운영특기(55310)의 경우 4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아야 했다. 


▼ 1대대 1중대 1소대 4번이었다. 1소대 내에서 번호는 키순서대로였던걸로 기억... 4번째로 컸다. 40여명중에 ㅋ




▼ 우리 기수부터 이렇게 사진을 찍기시작했다. 이전까지는 (636기까지) 실제 비행기 모형 앞에서 찍었다. 하지만 F-15K가 훨씬 멋지므로 합성사진이 좀더 나은듯.. 



▼ 신병 제 1훈련대대 G동 내무실 앞에서.. 신축 건물이라 시설은 정말 좋았다.




▼ 원래는 이렇게 찍었다... ㅋ 사진은 634기로 먼저 들어갔던 친구..



▼ 우리 637기 입단식 사진.



▼ 조교들, 그리고 수많은 동기들.. 천명도 넘는걸로 기억한다.



▼ 대대장님. 차호진 중령님.



▼ 국군도수체조 배우는중. 우리 소대는 아니다. 



▼ 영화 보는중. 훈련소에서 영화를 총 3편 보여줬다. 엄마, 아이앰샘, 가족.



▼ 물론 매일 구보를 하지만 소대장님, 모든 조교들이 다같이 뛰는 공식적인 구보훈련은 매주 한번씩 있다.  다음 사진은 첫 구보훈련때. 처음부터 군장을 메지않고 체련복 차림으로 뛰기 시작한다. 운좋게 공개된 사진이 바로 우리 소대. 나도 저 사진중에 있다. ㅋ

 


▼ 두번째 주부터는 전투복을 입고 전투화신고 구보를 한다. 전투구보. 우리 소대 아니라서 모자이크 안함..ㅋ



▼ 세번째, 네번째주는 단독군장 구보. 총하고 딴띠를 메고 뛴다. 어느 소대인지 몰라서 그냥 모자이크 안함..



▼ 유격때 기구타는거랑 유격체조를 하는데 기구타는것은 하나도 안힘들고 재미있었다.

 

▼ 유격기구 타기.


▼ 공군 종합 훈련장. 앞은 각개전투, 뒤는 유격랜드.



▼  소강당..여기서 훈련소 마지막 시험인 종합평가를 봤다. 



▼ 공군 기본군사훈련단 G동 시설. 바닥이 너무 뜨끈해서 화상입는줄..



 


▼ 중강당. 


▼ 사격훈련.



▼ 우리소대가 1소대라 그런지 부모님께 보내는 공개사진들에 자주 찍혔다. 체육대회중 줄다리기 할때.. 스마일이 나.. 4번이었으니 4번째!

 


▼ 완전군장 행군. 공군은 육군이나 해병대 처럼 엄청 오랜 행군은 하진 않는다. 게다가 당시 행군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산코스가 위험하다고 해서 기지내를 돌았다. 다리는 안아픈데 어깨가 아프더라..

 




▼ 공군 훈련소 내부 돌기.. 공군교육사령부라고 해야하나.. 크게 한바퀴 돌았다. 사진에도 보이지만 벚꽃이 만개한 4월 12일에 행군을 했다. 


일기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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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6:17. 오늘 행군이다. 아침부터 행군 사전교육 때문에 점호장에 집합한다.

AM 8:01. 곧 행군을 위해 집합한다. 짐이 꽤 무겁다. 배낭, 방독면, 헬멧, 탄띠 등등.. 방독면을 다리메어하니 불편하다.

AM 9:50. 43분 30초동안 걸어서 공군 기술고등학교 입구까지 와서 쉬는중..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어깨가 피곤하긴 한데 생각했던만큼은 아니다. 10분 휴식이다. 

AM 10:58. 아까 10시 40분 정도에 3분 쉬고 다시 20분 걷다가 다시 10분 쉰다. 아트라스와 커피를 먹을수 있다. 하늘에는 구름도 없고 바람도 불고 시원하다. 

PM 12:57. 31분정도 더 걸어서 E동 점호장으로 왔다. 행군사진을 찍으러 집합한 것이다. 분대별로 12명씩 찍었다. 결국 내무실 사진 한번 더 찍은 셈이다. 우리 분대는 처음으로 찍고 이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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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완전군장 구보. 봄비가 분무기처럼 흩날리때 뛰었다.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4월 13일 목요일.. 봄비가 먼지같이 흩날리면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완전군장차림으로 I,J동 점호장부터 벚꽃길을 지나 기지도로를 통해 2정문으로 나가서 종훈장쪽으로 들어와 한바퀴돌고 I,J동 점호장으로 돌아왔다. 17분 정도 달린거 같은데 그렇게 죽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힘이 조금 들었다. 이제 마지막 훈련이 끝났고 이제 계급장을 받아서 달고있다. 이병작대기..ㅋㅋ



▼ 이날은 왠지 모르겠지만 영어로 일기를 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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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Fri. AM 7:27. 

수료 D-Day이다. It's unbelievable that today is the day I've waited for more than 40 days. Even though today is the last day here, I still feel that I have some more training to go through. I still can't feel the happiness of leaving t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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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일은 나.. 우리 내무실 동기들과 함께..



▼  우리 1대대 동기들.. 스마일이 나..


▼ 훈련소에서 보급품 내의 안에 있던 두꺼운 종이를 접어서 휴가나가면 먹고싶은것을 하나 하나 적었다. 나가서 해야할것도.. 얼마ㅏ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 기수 (637기)부터는 훈련소 끝나고 특기학교 가자마자 7주차 휴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100일휴가대신 50일 휴가를 다녀오는 대신 100일휴가는 짧게 하는 뭐 그런 형식이었던것 같다. 



▼ 뒷면에는 달력을 만들어서 주요일정을 적었다. 지금 보니 후반기 교육때까지 썼다. 




▼ 제대하고 짐을 뒤지다보니 나온 훈련소 당시의 이름표들.. 저렇게 매직펜으로 써서 직접 실로 전투복등에 꿰매어서 주기했다.
 



▼ 추억 돋는 공군 기본 군사 훈련단가 노래.


▼ G동 내무실의 당시 기상노래였다. 기상나팔소리가 아니라 좋았지만 이것도 듣다보면 짜증났다.. 덕분에 아직도 이노래들으면 훈련소 생각이 난다. 지금들으면 참 좋은 노랜데.. 첫부분에 드럼소리가 들리기시작하면 눈이 자동으로 떠졌고, 나중에는 울리기 1분전에 눈이 자동으로 떠졌던 기억이 난다. 





전자과이기 때문에 통신특기를 지원했지만 결국엔 55310, 전력운영특기를 배정받고 군수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았다. 


▼ 훈련소에서 특기학교로 가자마자 첫 휴가를 내보내줬다. 3박4일이었지만 첫날은 버스타고 진주에서 서울가니 오후였고, 마지막날은 고속터미널에서 오후 1시에 단체로 버스를 타고 복귀했기 때문에 사실상 3일짜리 휴가. 그래도 엄청 기대하던 첫 휴가. 3월 6일에 입대해서 한달 반만에 나왔다. 


일기장을 보니 휴가 전날부터 정신없었던 스토리들이 써있다. 이렇게 내보내는 게 처음이라 공군측에서도 준비가 미비해서 밤늦게까지 약복잠바 받고 계급장 달고 명찰, 특기마크 달고 등등 급하게 할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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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첫휴가날.

AM 5:03. 5시 기상이라면서 안깨우는거보니 아닌가보다... 

AM 5:48. 이제서야 기상이다.

AM 8:10. 아침이 바쁘다 .약복입고 식당갔다가 돌아와서 기술, 행정, 정통, 군수학교가 다 점호장에 집합하여 교통편별로 집합했다. 바글바글하다. 조교들도 학교마다 모자색이 다르니 웃기다. 이제 나가는 느낌이 든다. 식사하러갈때 애들이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약복이 어색해서 그런지 몰라도 발이 안맞아서 조교님이 길 중간에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중략)

AM 9:10.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세번째 좌석에 앉았다. 앞에 TV도 있고 좋다. 상상플러스를 skylife로 보고있다. TV가 LCD이다. 고속버스가 점점 좋아진다.

AM 9:15. 출발! 들어온지 46일만에 교육사령부에서 나왔다. 

(중략)

AM 11:24. 신탄진 휴게소에 쉬러 들어간다.

AM 11:28. 전쟁터다. 담배피며 행복해하는 애들, 편의점에 수십 수백의 약복입은 이병들이 몰려서 계산을 기다리는 애들... 전화기에 줄서있는 애들.. 나도 전화기에 가서 서있었는데 도저히 할 수 없을것 같아서 포기하고 그냥 왔다. 버스에 타는 애들마다 한손에 과자, 음료수, 핫도그 등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온다. 신기한 듯 보는 민간인들.. 내가 군인임을 새삼 다시 느낀다. 이제 곧 떠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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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휴가 나와서 산 음식들.. 위에 종이에 써둔거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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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복귀날...

13:08. 이제 떠난다... 3박 4일 휴가가 벌써 다 지나 가버리고 복귀.. 밖은 날씨가 꾸리꾸리하다. (중략)

17:35. 교육사 입구다.....................



19:24. 도착하자마자 애들이 긴장을한다. 조교들도 이새끼 저새끼 하기 시작한다. 4일만에 들으니 적응이 안된다... 저녁을 안먹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억지로 먹인다. 꾸역꾸역 먹고는 점호장에 와서 아까부터 계속 소지품 검사를 하는 중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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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3일 토요일.. 군수학교에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다. 


▼ 휴대폰으로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고...


공군에서는 성적에 따라 자대를 갈수 있는 우선권이 있었기때문에 (지금도 그렇겠지..?!) 내 훈련소 성적으로는 내가 군생활 했던 서울공항으로는 절대 못갈 성적


이었다. 훈련소에서 각종 실기 시험과 필기시험 (사격, 화생방, 군사과목들..)을 보고 이 성적으로 특기별로 후반기 교육을 하는 학교로 가서 또 4주정도의 교육기간을 거치는데 여기서도 이론/실기시험성적이 적나라하게 성적순으로 나온다. 이렇게 훈련소 성적과 후반기 교육 성적을 합쳐서 자신의 석차대로 원하는 자대를 지원하는데 대부분 편의시설과 교통이 편리한 비행단 (공항)을 지원하고 서울/경기지역의 경우 수서역에서 가까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의 제 15 혼성비행단, 즉 서울공항을 가길 원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훈련소 성적이 대략 100등내외여야 서울공항을 갈 수 있다고 했다. 일기장을 보니 당시 내 훈련소 성적은 1200여명중 620등. 83.4점이었다. 등이상.. 후반기 교육 성적은 은근 좋았지만 워낙 훈련소 성적이 나빠서 내 성적가지고는 서울공항에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 특기/기수 동기들은 40여명이었는데 각자 자신이 원하는 자대를 겹치지 않도록 TO나온대로 썼고 그 중에서 성적이 좋았던 형이 서울공항을 가도록 결정이 되어있었다. 하지


만 마지막 순간, 그 형이 자신이 다른곳을 가겠다면서 나에게 서울공항을 양보해주었고 나는 정말 운 좋게 서울공항으로 자대를 가게 되었다.


▼ 군수학교에서 전력운영 특기교육을 마치고 받은 수료증서..


▼ 자대로 가는 날의 티켓.. 진주에서 성남까지..


일기장에도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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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AM 6:11. 애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한다. 5시 반 이전부터 일어나서 준비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바로 점호를 위해 집합했다. 더플백 메고 점호장에 와서 김상사님께서 전력운영만 빼내셔서 열심히 군생활하라고 격려해주셨다. (중략) 현수막에는 "환송, 군수학교 전 장병은 여러분의 성공적인 군생활을 기원합니다"라고 써있다. 이제 떠날 차례.. 현재 배속지를 불러주고 있다. 15비... 군수 1단지에서는 4명이 간다. 

AM 7:46. 밥 먹고 연병장에 모여서 기다리는 중이다. 15비는 인원이 많지 않아서 호송관없이 우리끼리 간다고 한다. 9시 50분 고속버스로 진주터미널에서 올라간다. 
(중략)
AM 8:41. 사령부 건물을 지나서 정문으로 가고있다. 더플백 아픙로 메고 장정소포는 발 밑에 깔고.. 이제 진주 교육사에서 나간다. 70여일만에...
(중략)
PM 13:43. 성남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탔다.
PM 13:52. 들어왔다....

===



▼ 서울 공항은 네이버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구글어스에서는 잘 나온다. 아마 보안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위성사진으로 잘 안보이도록 해둔것 같다. 사실 뭐 위치가 보안은 아니니... 


▼ 이등병...자대에서는 제대할때까지 시설대대소속으로 운영중대 발/변전반에서 근무했다. 다들 피한다는 시설대대. 공군내에서 3D 특기 (시설, 헌병, 방포) 중 하나다. 육군으로 치면 공병. 그래도 나는 전력운영특기로 운영중대의 발전반에 속해서 몸은 정말 편하게 지낼수 있었다. 기지 내의 중요한 지점들에 있는 비상발전기를 관리하며 때로는 24시간 직감병으로 생활하기도 했고 때로는 작업병으로 내무실에서 머물면서 일을 하기도 했다. 활주로 한가운데에서 새쫓는 BAT반도

파견나가봤고 활주로 돌줍는 FOD활동도 해봤다. 말년에는 물론 9개월동안 직감실에서 발전기옆을 24시간 지키며 후임 한명이랑 단둘이 지내면서 한자공부도 해서 어문회 2급도 합격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살도 많이 뺐다. 


▼ 이병때 자대로 면회온 친구들이 찍은사진..







▼ 물론 이등병때라 힘든 시기였지만 아직 앞으로 다가올 길고긴 군생활을 상상하지는 못했던 시절..





▼ 발전반에서 복무하며 중요한 사항들을 적어둔 OJT 노트. 닳고 닳아서 새로 쓴건데도 다 닳았다.



▼ 이병생활을 마치고 2006년 8월 6일, 일병 진급. 참 힘든 일병 생활이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각종 부대내에서 사건사고들을 겪으면서 정신없었다.



▼ 상병은 일병달고 6개월 뒤인 2007년 2월 6일에 달았다. 이제 일에 어느정도 적응을 하고 작업병으로서도, 직감병으로서도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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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5 Mon. 17:05. 오늘로 일병생활은 끝~ ㅋㅋ 상병이라고 크게 달라지는건 없지만 그래도 이제 군생활을 반정도 했다는 의미에 있어서는 뭔가 느낌이 남다르다. 이제 군생활 41%밖에 안했지만 그래도 상병 단다니 반정도 했다는 느낌이 든다. 일병은 꽤 시간이 빨리 간듯하다.

20:18. 대박! 군생활이 7일 줄었다! 631기부터 1일씩 줄어서 637기는 7일!! 6월 5일 제대가 아닌 2008년 5월 28일 제대다!! ㅋㅋ 한달 넘기고 제대하는거랑 또 다른 느낌!! Good!!

2/6 Tue. 21:42. 오늘 상병달고 바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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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장 달고 2007년 가을, 2007 서울 에어쇼 현장에서 전력지원중.. 놀러온 친구와 함께 사진! 이제 짧은 휴가 나가는것보다는 그냥 부대에서 편하게 쉬는게 좋겠다~라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민항기 기종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활주로 한가운데 풀밭에서 새쫓는 폭죽을 터뜨리며 코앞에서 대통령 전용기인 보잉 737 기종이 착륙하며 뿜어내던 하얀색 바퀴타는 연기 냄새까지 맡아봤다. 정말 짜릿한 군생활이었다. 



▼ 병장은 2007년 9월 6일에 달았다. 병장 달고도 9개월이 지나야 제대.. 아직 군생활 66%밖에 안한 셈.. 가끔 새벽 5시~6시쯤에 중동으로 파병가는 우리나라 군 장병들을 환송하는 사역?이 있었다. 대부분 착출되어 나오는 계급은 당연히 이등병이나 일병들.. 하지만 난 병장이 되어서도 내가 자원해서 나갔다. 덕분에 나만 계급이 높았다.. 병장때도 갔다. 그 이유는 대부분 이들이 타고 나가는 비행기가 민항기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였고 그 항공기들을 진짜 코앞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이유 하나만으로 새벽에 덜덜 떨면서도 태극기 흔들며 나가서 비행기 구경하며 행복했었다. 



▼ 제대하던 2008년 달력.. 하루하루 X자를 쳐가며 오매불망 기다렸다.. 5월 28일.. 한자2급공부도 했기때문에 이곳저곳 한자가 써있다..



▼ 제대하기 몇일전.. 면회온 부모님과 함께.. 2008년 5월 24일 토요일..


▼ 드디어 제대하는 날.. 5월 28일.. 단장님과 제대하는 637기 모든 동기들과 함께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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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Tue. 22:24. 드디어 마지막날 밤이다.. 지난 2년 3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처음 막막하게 시작한게 벌써 끝까지 오다니... (중략)  대대장 보고를 오후 4시10분쯤 했다. 역시나 군번선임인 내가 전입신고에 이어 전역 신고도 했다. "신고 합니다. 병장 정원일, 동 송XX, 동 이XX, 이상 3명은 2008년 5월 28일 부로 전역을 각각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이 신고를 하게 될 날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하고 나니 홀가분하고 신기했다. (중략) 휴.. 이제 나갈때가 되었구나.. 떨린다. 생각안하고 있을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제대가 내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다시 설렌다. 잠잘수 있을까.. 


5/28. Wed. 6:38.

마지막 점호도 끝나고 이제 짐도 다 챙겼다. 잠 안올 것 같았는데 잘 잤다. 새벽 세시쯤 잠깐 깼다가 비오는 소리 듣고 잔것 빼곤 깨지도 않고 잤다. xx 코고는 소리도 안들렸고.. PC방 잠깐 들렀다가 가야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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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 7권의 군생활 일기가 끝이 났다.. 지금 읽어봐도 생생하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것 같다. 7권 어디를 펴서 읽어도 생생하다.. 그만큼 내 인생에 군생활이 진한 경험으로 남아있어서 그런가보다.

▼ 제대하며 부대/대대에서 받은 선물들..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내가 좋아하는 민항기도 많이 보면서 8일 단축된 814일, 2년 2개월 22일의 군생활을 보람차게 마쳤다. 군생활에 대해 안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후임들, 선임들 사이에서 내가 맡은일을 처리해가며 사회생활 하는 방법을 배웠고 팀워크의 중요성도 많이 배울수 있었다. 


실제 내 유학 SOP에도 군생활 내용이 짧지만 한 문단으로 언급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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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months of military service in the Republic of Korea Air Force Seoul Airbase was a priceless experience. As I was operating an emergency runway generator during a sudden black out before take-off of the presidential plane, I realized the value of teamwork and sacrifice. (중략) Since then, I constantly refresh myself that what I am responsible of are not only crucial for me but also for partners that I work with, institute I am affiliated to, and the world I live in. I will continue prioritizing the value of cooperation and sacrifice as I live as an engin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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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군대를 안가려고 국적포기도 하고 어떻게든 안가려고 발악하는 연예인들도 많았다. 귀신이 보인다거나... 이빨을 뽑거나... 쯧쯧..

유학을 가려면 군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군대 대신 석사 마치고 방산업체에서 일하는 것도 보았다. 또는 아예 해외로 나가서 캐나다 국적을 취득하여 대한민국 국적포기를 하는 친구들도 실제 주변에 있다. 물론 경력상으로는 군대에서 보내는 것보다 전공을 살려서 방산업체에서 일하고 유학나가는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도 공군으로 갔을것이다. 군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인생에 도움되는, 어디서도 배우지 못할 유무형적인 것들을 충분히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도 공군이라는 구호가 있었는데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 문구이다. 나도 내 나라를 지키는데 일조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당당하게 마쳤다는 것에 대해 참 뿌듯하다. 이 쓰레기같은 나라, 못살겠다, 망해라, 그렇게 울부짖는 사람들도 많지만 난 싱가폴에서 한국이란 소리만 들어도 뭔가 뭉클했던것처럼 아직도 태극기를 보거나 애국가를 들으면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자랑스러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고쳐나갈건 많지만 그래도 지난 60여년간 피땀흘려 세워진 나라이고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 만한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 훈련소에서 Chung인데 Jung으로 보급받았다. ㅠ





다음에는 내 취미에 대한 글을 써볼 생각이다. 여행은 내 인생에서 매우 큰 부분임이 틀림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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